김한길 최명길 부부가 백허그로 애정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최명길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랑스런 잘다녀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밤마실 이라는 글과 함게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공개된 사진 속 최명길, 김한길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특히 최명길은 김한길을 뒤에서 안으며 달달한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길길이 다시 산다에서 폐암 4기를 극복한 김한길 최명길 부부의 일상이 공개됐습니다.
25일 밤 첫 방송된 채널 A의 새 예능프로그램인 어바웃 해피 길길이 산다에서 김한길 최명길 부부의 일상이 그려졌습니다. 이날 김한길은 막내아들의 등교를 돕기 위해 직접 운전했습니다.
최명길은 회복 후 김한길이 다시 운전하는걸 SNS에 올린 적이 있다. 너무 좋더라면서 다시 운전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좋았다고 밝혔습니다. 폐암 투병 중인 김한길은 폐도 한 쪽이 없어서 남들 보다 숨이 빨리 찬다. 둘레길 같은 길은 괜찮다. 오르막길은 걸으면 숨이 찬다고 밝혔습니다.
김한길은 투병 중 자신에게 힘이 된 아내 최명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김한길은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까지 나한테 해주나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최명길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게 되더라고 남편 김한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최명길은 김한길에게 당신은 언제 제일 신나느냐고 물었고, 김한길은 지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김한길은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 다시 걷게 되면서 주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온통 새롭더라. 알아가는 것이 나한테는 기분좋은 일이다. 그게 또 하나의 새로운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한길은 1952년 9월 17일 생으로 올해 68세입니다. 일본 도쿄도에서 아버지 김철과 어머니 윤초옥 사이에서 태어났고 만 4세 시절 1956년에 부모와 함게 대한민국에 귀국하였고 그 후 1976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그는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1981년 소설 바람과 박제로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미주기자로도 일을 했습니다. 귀국한 후 방송위원회 기획국 국장, 방송위원회 사무총장 서리와 기조실 실장을 지내기도 했고 소설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화개장터에 대한 신문기사로 조영남과 함께 화개장터를 작사하여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소설가 활동 외 방송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2년 제 14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 을에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습니다. 이후 제 14대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의 공보특별보좌관을 맡았습니다. 1991년 최명길과 재혼을 하여 2남을 두었고, 1996년 제 15대 총선에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됐고,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이 후에도 2012년 제 19대 총선에 출마하여 광진구 갑에 당선되었고, 안철수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에 취임하였고 재보궐선거에 패배한 책임을 지고 사퇴 후 더불어 민주당을 탈당하기도 했습니다. 탕당 후 국민의당에 합류하였지만 20대 총선에서 야권 연대가 무산된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2018년 10월 폐암 4기 선고를 받고 투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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